오늘 하루도 흘러넘치는 생각을 정리하고자 글을 쓴다. 이번에는 주제를 조금 다르게 두어 다른 나라에 생활하거나 잠시 여행한다는 전제 하에서 일어나게 될 나만의 뇌피셜(?)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십오 년의 미국 생활이 싫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다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게 인생이라기에 삶에 어떠한 큰 변화가 찾아올는지는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앞으로도 쭉 미국에 사는 것인데 글쎄... 아무튼 그래서 첫 번째 시간으로는 독일어도 공부하는 겸 겸사겸사 독일에 대해 풀어볼까 하는데 먼저 이 글을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2023.02.07 - [배움의 기쁨/독일어] - 독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 (그래도 한 번쯤이라도...?)
독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 (그래도 한 번쯤이라도...?)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독일 하면 좋은 점들을 많이들 떠올리곤 한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분단국가라는 공통된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과는 달리 과거사에 대하여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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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도 밝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시절 독일 유학의 꿈이 잠시 있었다. 하지만 당시 독일에 계시던 친척 분께서 독일에서의 조기유학 단점에 대하여 조목조목 아버지께 이메일을 통하여 알려주셔서 결국에는 없던 일이 돼버렸었다. 그리고 이 분의 조언대로 한국에서 음대(정확히는 지방국립대 소속 예술대학)를 나왔고 졸업 후 학창 시절로서는 뜻하지도 않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어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독일어도 배우겠다 독일 문화에도 관심이 많겠다. 여행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바로 라이프치히! 이유는 간단하다, 바흐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니까.
독일 유학 다녀오신 선생님께서는 성 토마스교회랑 바흐 박물관이 한마디로 노잼이었다고 하셨는데 바흐 광팬(?)인 나로서는 아무 상관없다.
이 사진에는 잘려서 보이지 않지만 바로 이곳에 바흐의 무덤이 있다. 원래는 라이프치히 성 요한 교회에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 건물이 파괴되면서 1950년에 성 토마스 교회로 이장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다. 바흐가 내 삶에 미친 영향력이 실로 어마어마한데 관광 왔으면 그냥은 못 가고 꽃도 바치고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예의를 표해야지. 참고로 몰라도 되는 거지만 사진 속 양 사이드에 액자들이 걸려있는데 역대 칸토어와 주임 목사님들 초상화인걸로 안다.
마주 보는 반대편에는 이렇게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합창단이 오르간 자리 주변 빈 공간에서 합창단과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실제 현장에서 들으면 과연 어떠한 감동으로 다가올지... 오늘도 방구석에서 유튜브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리고 사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이드 쪽에 오르간이 한 대 더 있는데 바흐 사후 한창 뒤에 지어진 것이다. (설교단 쪽인지 맞은편인지는 기억 못 함)
출처: https://youtube.com/watch?v=NU5mGcRJZzg&feature=shares
이것으로 라이프치히 이야기는 끝내고 다음은 진지하게 산다는 가정 하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한 번 풀어볼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단순한 나의 공상일 뿐이지 독일 비자를 받기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 중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히고 싶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단지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을 정돈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비자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는 어차피 현실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니까 딱 접어두고, 독일에서 거주할 신분이 해결되었다는 가정 하에서 이야기를 푼다면, 나는 역시 원래 전공인 음악으로 먹고사는 게 그나마 제일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작곡으로 대학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대음악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과정이라면 차라리 음악학 내지 음악사 전공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독일 음대에 관심 있어서 잠시 찾아보니 연주자 과정은 콘서바토리인데 음악 이론 쪽은 일반 대학으로 분류가 되며 백 퍼센트 영어로도 수업이 진행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의외로 미국서도 유학을 많이 하고, 한국서도 미국과 비교하면 학비도 훨씬 저렴하니까 독일을 많이 선택들 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미국 살고 있지만 비싼 학비 및 현실과의 괴리감 등으로 인하여 미국 음대 대학원은 나오지 않고 그냥 취미로만 하고 있다.
공부는 그렇다 치고 벌이로 생각해 둔 건 바로 합창단원이 되는 것이다. 독일뿐만이 아니라 유럽에는 음악의 본고장답게 지역마다 크고 작은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혹은 앙상블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악기 해봤자 피아노 밖에 못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 반주도 전혀 해본 적이 없으니 재껴두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승부할 수 있는데 비전공이니 천상 알토를 할 수밖에 없다. 여고에서도 그랬고 대학 시절 비전공 합창도 그랬고 성가대도 그랬고, 난 항상 소프라노를 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악 전공자들이 없을 때 가능한 일. 이제는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해서 고음이 옛날만큼 안 나올뿐더러 목도 자주 쉬는 편이다. 그렇다고 저음도 잘 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나에게 안 맞는 고음 꽥꽥 질러대고 목 다 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음 잡기는 좀 힘들지만 알토나 세컨드 소프라노를 하는 게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만 같다.
옛날처럼 자존심이건 뭐건 다 필요 없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는 노래를 제대로 찾아서 합창단원이 되어 부르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래 영상처럼.
출처: https://youtube.com/watch?v=yXmmffZCFAA&feature=shares
그런데 웃긴 건 고등학교랑 대학 때 소프라노 하면서 나의 한계음은 항상 A플렛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글로리아 파트리 이 노래만큼은 진심 알토로 부르고 싶음) 반음 바로 위인 A 이상부터는 도통 내지를 못했었음.
유튜브에 합창단에서 부르기라는 제목으로 비공개 재생목록까지 만들었는데 합창을 안 한지가 백만 년 전이고 대부분 멜리스마 기법이 많은 바로크 음악인지라 사실 알토 부르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이면(?) 또 금방 쉽게 눈치껏 잘 따라서 할지 누가 알아. 설마 나이 많다고 안 받아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럼 뭐 지역 합창단은 포기하고 교회 성가대원만으로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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